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제국 황실 복원론 (문단 편집) === 황실 복원의 정당성 결여 === 대한민국 자체가 [[민주공화국]] 체제의 국가로 탄생되었는데, 구태여 대한제국 황실을 복원시킬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심지어 조선 왕조 후손이었던 이승만조차 대한제국 황실 복원은 거론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물론 조선 당시 기준이었으면 어디서 왕족 소리는 꺼내지도 못할 정도로 먼 친척이긴 하지만(태종 이방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이왕가 인물들이랑은 최소 50촌 이상이다.) 본인도 조선 왕의 핏줄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이승만은 구 왕족들을 박대하며 귀국을 열심히 막았다. 행여나 여론이 왕정을 원하게 되면 공화제에 큰 위협이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귀국하려 하자 불허했고, 오히려 이들의 일본 아카사카 저택을 "한국 재산이니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주일 대표부 공관]]으로 내놓으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1950년 일본을 방문한 이승만을 만나 대한민국 국적 취득과 귀국을 논의했을 때도 여전히 냉담한 반응이었으며, 같은 해 차남 이구가 미국 [[MIT]]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대한민국 여권|여권]] 발급을 요청했지만, 이승만은 그것도 거절했다. 결국 그는 [[일본국 정부|일본 정부]]가 발행한 임시 여권으로 미국을 오갔다. [[6.25 전쟁]] 때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난갔던 [[순정효황후]]가 [[창덕궁 낙선재]]로 환궁하는 것도 불허해, 순정효황후는 1960년 [[4.19 혁명]] 전까지 서울 정릉의 인수재에서 지내야 했다. 애초에 역사적으로 [[전제군주정]]이 끊겼다가 [[민주공화정]]으로 새로 태어난 상황에서 [[반동(정치)|그것을 다시 되돌려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존재하질 않는다. [[민주공화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을 추구하는데, 여기에는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평등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군주정으로의 회귀는 이것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